데카르트의 철학과 실생활 또는 비즈니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적절한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도록 해주었다.
자신의 처지를
떠나서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겠지만 소통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생각의 시작임에는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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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않는 리더는 미래가 없다! 방법적 회의로 신을 증명한 데카르트
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여러분은 오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잘’ 내리려고 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취합한 정보는 옳은 것일까요. 조직원들은 제대로 일을 했을까요. 회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요.
우리의 경험적 감각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사막의 신기루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갈증에 지친
나그네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멀쩡한 젓가락도 물에 넣으면 구부러져 보입니다. 꿈은 어떻습니까. 잠든 동안에는 현실 같지만 깨고 나면
개꿈이죠. 그래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주의자들의 논변을
단번에 분쇄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어떻게 이 ‘불확실성’이란 인간의 숙명적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데블스 애드버케이트’의 실험
중세시대 신부가 서품을 받으려면 확고한
신앙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악마와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악마를 불러다가 채점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배 신부 중에서 가장 현명한 신부에게 악마의 역할을 부탁합니다. 선배 신부는 열과 성을 다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온갖 가혹한 질문을
해댑니다. 이제 그는 이 악마의 논변을 타파해야 합니다. 이처럼 선배 신부가 실제로는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악마의 입장을 대신 변론한다는 것이
바로 데블스 애드버케이트(devil’s advocate: 고의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의 소통 논리이죠.
여기에 힌트를 얻어
데카르트도 악마를 상정합니다. 그것도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분명 사실이 아닌데, 악마는 내게 믿으라고
합니다. 내가 앉고 있는 의자도 가짜입니다. 이 세상은 불과 5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속아서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한다고 착각한 것이죠.
이번에는 이성적 판단조차 악마에 의해서 속고 있다고 의심해 봅니다. 1+1은 3인데, 악마가 2라고 믿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여러분 주변에 이렇게 억지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아무튼 데카르트가 이런 식으로 의심했더니,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 한 가지,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데카르트는 발견합니다. 그게 뭘까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만약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면, 나는 의심을 안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적 진리가 됩니다. 적어도 의심하고 있는 동안은 말이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는 이 말이 나왔습니다. 인류는 그토록 찾아 헤맨 절대 진리를 드디어 발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견하는 데카르트의 천재성은 악마가 요구한 모든 것을 인정해 줌으로써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끝에 반전을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유도 선수가 상대방이 공격하는 힘을 이용해 한판승을 낚아채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을 회의 시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김 과장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능력과 지식을 증명하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편의 이
과장이 김 과장의 논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옵니다. 김 과장이 방어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데카르트 식은 이겁니다. 첫째,
상대방으로 하여금 가장 강력한 주장을 펴게 한다. 둘째, 그런 다음 그 논점을 타파한다. 그러면 적은 맥없이 무너집니다. 물론 기본 전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런 철학의 소통 방식에 주목한 한 똑똑한 본부장이 어느 날 저에게 물었습니다. 신규 사업
프로젝트였습니다. 의견이 딱 반으로 갈라져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성하는 직원들에게는 반대해야 하는
3가지 이유를, 반대하는 직원에게는 찬성하는 3가지 이유를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 후 토론을 시키고 과정을 지켜보십시오.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이 방법은 제가 막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현재 미국 최고의 로스쿨에서 사용하고 있는 토론식 소통 방식입니다. 철학은 정신적 이종
격투기입니다.
자, 자신의 처지를 떠나 한 발치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부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전체를 보는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불확실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정신의 중요성을 알았던 스티브 잡스
여러분이 새로운 사업을 찾으려면 머릿속으로 1000개의 회사를 만들었다 지웠다 해야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비판적 정신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사업 아이템을 잡는 첩경이 될 테니까요. 이때 데카르트가 의심한 것은, 그 의심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심을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한 것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이것이 바로 전문 용어로 방법론적 회의주의의 핵심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데카르트. 사실 그가 궁극적으로 증명한 것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존재에서 전지전능한 초월자를 증명하는 이 방식이 중세의 신 중심 세계를 탈피하는 계기가 된 것은 하나의 역설에 가깝습니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물질과 정신으로 구성된 이원론(dualism)으로 봤습니다. 둘 중에 더 우월한 것은 물론 정신입니다.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꿔 나갑니다. “애플은 인문학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 내에 있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다 주겠다”라고 외친 스티브 잡스는 생각·아이디어·정신의 우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최고경영자(CEO)입니다.
누가 물질의 중요성을 부정하겠습니까.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도 물질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물질이 중요한 것은 정신이 세상을 바꾸는 데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수단이라도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물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힘을 가진 리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에서만 생각하는 리더는 사람들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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